국가 경제의 백년대계이자 안보의 중핵으로 꼽히는 반도체 산업이 또다시 정치적 득실 계산과 지역 안배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우려가 국회 심장부에서 제기됐다. 지난 13일 여권의 주요 정책 연구 모임과 영남권 의원들이 주최한 정책 세미나에서는 현재 추진 중인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의 실효성을 두고 매우 차갑고 매서운 진단이 내려졌다. 전문가들과 참석 의원들은 반도체 제조 공장의 핵심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공업용수와 막대한 전력 공급 체계, 그리고 첨단 연구를 수행할 핵심 인재 수급 구조 등이 근본적으로 결여된 상태에서 대규모 단지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예산 낭비이자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산업 입지는 결코 정치적 안배의 전유물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그 자체로 거대한 에너지 소비 집약형 생태계이다. 미세 공정을 거치는 최첨단 생산라인 하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중 24시간 가동되는 초고압 변전시설과 대규모 청정 용수가 쉼 없이 공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지적되는 호남 지역의 인프라 실태는 참담하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다는 외형적 홍보와 달리, 실제 전력을 공장으로 끌어올 송배전망 인프라는 극히 빈약하며, 극심한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 시 대량의 공업용수를 적기에 조달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우수 인재들의 절대다수가 수도권 이남을 벗어나기를 꺼리는 현실 속에서 지방에 껍데기뿐인 클러스터를 지어봤자 무용지물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경고는 단순히 특정 지역을 폄하하는 주장이 아니라 국가 미래를 걱정하는 현실론이다.
국회의원 연구단체 ‘인구와 기후 그리고 내일’을 비롯해 대구·경북 및 영남권의 대표적 경제통 의원들인 구자근, 최은석, 강명구 의원 등은 무리한 반도체 고집 대신 지역 특성에 부합하는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호남의 풍부한 재생에너지 잠재력을 백분 활용하여 전력 소모량이 크지만 반도체 공장만큼 극단적인 용수나 입지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 대규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거나, 미래 핵심 먹거리인 이차전지 및 그린수소 산업을 육성하는 방향이 훨씬 실현 가능성이 크고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이득이라고 제안했다. 이는 지역 이기주의를 넘어 국가 차원의 산업 배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밀한 구조적 재설계 제안으로 풀이되며, 정책 결정권자들의 결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은 단 1초의 멈춤도 허용하지 않는 혹독한 레이스다. 미국과 대만, 중국 등 첨단 기술 패권을 쥐려는 경쟁국들이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집적화를 도모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지역 갈등과 정치적 거래 수단으로 반도체 지도를 난도질하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히 성찰해야 한다. 산업 입지 선정은 정치적 배려가 아닌 과학적 인프라와 자원의 합리적 효율성을 기초로 결정되어야 마땅하다. 국토의 균형 발전은 소중한 가치이나, 그것이 국가 주력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는 교각살우의 누를 범해서는 안 된다. 보다 현실적이고 정교한 국가 산업 벨트 포트폴리오 재구축이 시급한 시점이다.
출처: 대구일보 (호남 반도체 인프라 있나…국힘 “재검토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