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의 암울한 그림자가 전국을 엄습하는 가운데, 천년의 역사를 품은 경주시가 행정 경계를 뛰어넘는 거대한 도전장을 던졌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언론인 간담회를 통해 단순한 인구수 기준의 행정 구분을 거부하고, 도시의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위상에 걸맞은 ‘역사문화관광 특례시’ 지정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공식 천명했다. 이는 단순히 행정적 지위를 격상시키는 문제를 넘어, 경주가 보유한 독보적인 자산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자립형 강소도시로 생존하기 위한 백년대계의 서막이다.
경주시의 이 같은 구상은 2025 APEC 정상회의라는 대규모 국제 행사를 유치하며 확보한 세계적 인지도와 고도화된 도시 인프라를 일회성 행사에 묻어두지 않겠다는 강한 실천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주 시장은 민선 9기의 핵심 비전으로 포스트 APEC 시대의 장기적 성장 동력 확보를 꼽으며, 행정 및 재정적 권한이 대폭 이양되는 특례시 지정을 그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현재의 지방자치법 체제 하에서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이라는 획일적 잣대로만 특례시를 지정하고 있으나, 경주처럼 매년 수천만 명의 유동 인구를 수용하며 막대한 문화유산 보존 비용을 지출하는 특수 지역에 대해서는 예외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정당한 목소리다.
실제로 경주시는 국가적 보존 가치를 지닌 역사 문화재가 밀집해 있어 개발 제한 등 숱한 규제 속에서 역차별을 받아왔다. 반면 이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드는 막대한 재정적 부담은 고스란히 기초지자체의 몫이었다. 경주시가 구상하는 특례시 모델이 실현된다면 광역자치단체 수준의 독자적인 행정 권한을 확보하여 복잡한 심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정부의 재정적 특별 지원을 이끌어내어 세계 10대 관광도시로의 도약에 한층 속도를 낼 수 있게 된다. 이는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대전제와도 정확히 부합하는 정책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울러 경주시는 문화관광에만 편중된 기형적 경제 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미래자동차 산업과 원자력 발전 등 첨단 제조 산업의 고도화를 양대 축으로 삼는 투트랙 전략을 수립했다. 제조업 체질 개선과 일자리 창출을 병행하여 청년 인구 유출을 막고, 동시에 특례시 지정을 통해 정주 여건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겠다는 포석이다. 중앙정부와 국회 역시 단순한 인구 논리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 영토의 중심지인 경주가 제 목소리를 내며 독자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특별법 제정 등 제도적 문을 열어주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출처: 대구일보 (주낙영 경주시장 “역사문화관광 특례시 지정 추진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