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현대사와 서민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냈던 영남권 마지막 향토 백화점, 대구백화점(이하 대백)이 결국 창업 82년 만에 지배구조의 대전환을 맞이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창업주 가문이 이끌어온 독자 경영권이 제3자에게 넘어가게 된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일개 유통 기업의 매각이라는 단편적인 사건을 넘어선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대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향토 자본의 완전한 몰락이자, 수도권 거대 유통 재벌들의 가혹한 시장 침탈이 빚어낸 뼈아픈 결과물이다. 1944년 중구 삼덕동의 작은 점포였던 ‘대구상회’로 출발해 한강 이남 최대의 유통 거점으로 군림했던 대백의 무기력한 퇴장은 지역 사회에 말할 수 없는 침통함을 안겨주고 있다.
대백의 몰락을 추동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외부 대기업 자본의 무차별적인 지역 공습이다. 2010년대 이후 현대, 신세계, 롯데 등 이른바 유통 ‘빅3’ 대기업들이 대구 시장에 메가급 점포를 잇달아 개점하면서 대백의 생존 공간은 급격히 압착되었다. 특히 지난 2016년 동대구역 복합환승센터에 들어선 대구신세계는 막강한 자본력과 독점적 명품 브랜드 유치 능력을 앞세워 지역 유통 지도를 단숨에 재편했다. 이에 대백은 이렇다 할 방어 전략을 내놓지 못했다. 자존심과도 같았던 동성로 본점은 이미 수년 전 영업을 전면 중단하며 도심 흉물로 방치되었고, 마지막 남은 보루인 대백프라자점마저 만성적인 적자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2대 경영인 구정모 회장은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본질을 들여다보면 대백의 실패는 비단 외부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급변하는 소비 트렌드 변화에 철저히 무감각했던 경영진의 보수성과 혁신 의지 결여가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뼈아프다. 모바일 이커머스 시장이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오프라인 공간이 경험 중심으로 다변화되는 격변기 속에서도, 대백은 ‘과거의 영광’과 애향심 마케팅에만 안주했다. 명품 유치 경쟁에서 밀려난 후에도 중저가 브랜드 위주의 구태의연한 MD 구성만을 고집해 결국 미래 핵심 소비층인 젊은 세대들의 완전한 외면을 받았다. 대구의 심장부였던 동성로 상권의 쇠락과 맞물려, 향토 기업이라는 명분만으로는 냉혹한 자본주의 시장 논리를 극복할 수 없다는 비정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향토 유통 기업의 상실은 대구 지역 경제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예고하고 있다. 지역 토착 자본이 설 자리를 잃고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 유통망이 상권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지역에서 창출된 부가 고스란히 외지로 빠져나가는 ‘빨대 효과’가 더욱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구 소상공인들의 생태계를 질식시키고 지역 고용의 질을 하락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대구시 당국과 경제계는 대백의 몰락을 한 시대의 종말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고사 직전에 놓인 지역 토착 기업들을 육성하고 자본의 역외 유출을 막을 수 있는 구조적인 방어벽을 구축해야 한다. 전통의 멸실을 구경만 하기에는 대구 경제가 마주한 내일이 너무나 위태롭다.
출처: 대구일보 (‘향토백화점’의 몰락…유통 ‘빅3’에 밀려난 대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