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중심가 중구 동성로를 지키던 최후의 향토 자본이자 80년 역사의 상징이었던 대구백화점(이하 대백)이 결국 창업가 2대 경영체제를 마무리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1944년 일제강점기 말엽 ‘대구상회’라는 20평 남짓한 상점으로 출발해 전성기 시절 한강 이남 최대의 유통망을 자랑했던 대백의 경영권 매각은, 단순히 한 개별 기업의 쇠락을 넘어 지방 도시의 자생적 상권이 거대 대기업 유통 공룡들의 무차별적 영토 확장 앞에서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파산 선고와 다름없다.
지역 유통업계에 따르면, 고(이하 고) 구본흥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2대째 기업을 이끌어온 구정모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전격 용퇴를 결정하면서 대백은 거대한 구조적 대전환기를 맞이했다. 대백의 침몰은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예견된 비극이었다. 신세계, 현대, 롯데 등 이른바 서울발 유통 ‘빅3’가 대구 영토를 잠식하기 시작하면서 골목길 구석구석까지 미치던 대백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위축됐다. 초대형 복합 쇼핑몰과 명품 중심의 MD 전략으로 무장한 대기업의 파상 공세에 대백은 이렇다 할 방어선을 구축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밀려났다. 동성로 본점의 무기한 휴업에 이어 마침내 도달한 이번 매각 결정은 대구 유통업계의 패권이 중앙 집권적 대자본으로 완전히 종속되었음을 공식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사태가 던지는 진짜 충격파는 대구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 생태계에 미칠 파장이다. 대백은 단순한 백화점이 아니라 주변 동성로 일대 소상공인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상권의 핵심축’ 역할을 해왔다. 대백의 집객 능력이 상실되면서 대구 최대 번화가였던 동성로마저 공실률이 급증하고 상가 임대료가 폭락하는 등 심각한 슬럼화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지방 도시의 자생적 소비 생태계가 붕괴되고 중앙 자본만 배를 불리는 작금의 유통 구조 왜곡은 지역 소득의 역외 유출을 심화시켜 지방 소멸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제 대구시와 유관기관들은 단순히 한 향토기업의 소멸을 애도하는 수준을 넘어, 무너진 도심 골목상권을 되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대백이 남긴 빈자리는 지역 상인들이 자생할 수 있는 새로운 로컬 브랜드 육성과 디지털 전환 지원 등 패러다임 시프트가 수반될 때 비로소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80년 향토 자존심의 침몰은 우리에게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뿌리가 무엇인지 다시금 묻고 있다.
출처: 대구일보 (‘향토백화점’의 몰락…유통 ‘빅3’에 밀려난 대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