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현대사와 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공간이자, 영남권 지역 자본의 마지막 보루였던 대구백화점(이하 대백)이 창업 80여 년 만에 경영권을 타인에게 양도하며 쓸쓸한 역사적 퇴장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일개 유통 기업의 경영권 이양을 넘어, 대구의 정체성을 구성하던 토착 유통 자본의 시대가 마침내 종언을 고했음을 보여주는 중대한 사회적 전환점이다. 고(故) 구본흥 명예회장 시절부터 2대째 가업을 지탱해 온 구정모 회장 체제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사실은 대구 유통사의 거대한 축이 완전히 붕괴되었음을 의미한다.
대백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격동기였던 광복 직전인 1944년 1월, 대구 중구 삼덕동에서 단 20여 평 남짓한 공간으로 출발한 ‘대구상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속 성장을 거쳐 1969년 동성로에 초대형 본점을 개점하며 이른바 한강 이남 최대의 단일 유통 매장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대백 앞 광장은 수십 년 동안 대구 시민들의 만남과 약속의 장소이자 민주화와 청년 문화의 발상지로서 공공재에 가까운 성격을 지녔다. ‘대백 앞에서 만나자’는 외침은 대구인들에게 단순한 지리적 지칭이 아닌 사회적 공통의 연대의식을 의미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유통 시장의 지각 변동은 대백의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막강한 자본력을 무기로 앞세운 유통 대기업 ‘빅3’가 대구 영토를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지역 친화적 밀착 경영의 장점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초대형 복합 쇼핑몰과 명품 브랜드 유치력을 앞세운 대기업들의 공세에 맞선 대백은 2021년 본점의 눈물겨운 영업 중단이라는 극약 처방까지 단행했으나, 누적된 경영 악화와 자금난의 질곡을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학계와 시장 전문가들은 중앙 집중화된 거대 자본 유입에 효과적으로 맞서 대응할 향토 자본만의 협업 생태계가 부재했던 점을 매우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다.
이번 대구백화점의 몰락은 지방 중소 도시들이 겪는 자생적 상업 구조 해체와 문화적 고립이라는 거시적 위기의 투영에 다름없다. 지역의 부가 수도권 거대 기업으로 고스란히 유출되는 구조 속에서, 향토 기업들의 쇠락은 지방 소멸을 가속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비록 ‘대백’이라는 오랜 상징적 명칭의 존속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80년간 지역민들과 호흡하며 함께해 온 마지막 자존심이 빛을 잃어가는 작금의 현실은 대구의 사회문화 전반에 깊고 무거운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출처: 대구일보 ([‘향토백화점’의 몰락…유통 ‘빅3’에 밀려난 대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