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불볕더위가 대지를 뜨겁게 달구는 7월 하순, 대구의 산하는 붉은 백일홍, 즉 배롱나무꽃의 흐드러진 자태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꽃이 귀한 이 계절에 홀로 피어나 백일 동안 강렬한 붉은빛을 뿜어내는 배롱나무는 영남 지방의 선비 정신과 풍류를 대변하는 상징적 존재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전통 한옥과 자연의 조화를 즐기는 ‘한옥 힐링’과 ‘레트로 감성’이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대구의 유서 깊은 문화유산들이 단순한 역사 교육의 장을 넘어 현대적인 문화 소비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국가 보물 제2053호로 지정된 달성군 하목정(霞鶩亭)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과 사진작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영남 제일의 배롱나무 명소로서 그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하목정의 탄생과 그 역사적 궤적을 추적해 보면 조선 중기 사림의 깊은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낙포(洛浦) 이종문(李宗文)이 1604년(선조 37년) 경에 창건한 이 누정은, 낙동강의 굽이치는 물줄기와 어우러져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하목정’이라는 당호 역시 인조가 능양군 시절 이곳에 머물렀던 인연으로 훗날 왕위에 오른 뒤 직접 써서 하사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는 단순한 사가(私家)의 정자를 넘어 왕실과의 깊은 인연을 증명하는 역사적 표식이다. 하목정의 건축적 미학은 처마 끝의 유려한 곡선과 탁 트인 대청마루를 통해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 기법의 극치를 보여준다. 대청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배롱나무꽃은 마치 한옥이라는 액자 속에 담긴 붉은 동양화처럼 다가오며, 방문객들에게 시공간을 초월한 예술적 극치를 선사한다.
이러한 하목정의 문화적 인기는 대구·경북 지역의 로컬 관광 활성화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동안 대구의 관광 산업은 근대 골목 투어나 도심형 쇼핑에 치우쳐 있었으나, 최근에는 하목정을 필두로 한 달성군 묘골 육신사, 동구 신숭겸 장군 유적지, 무태 서계서원 등으로 이어지는 ‘배롱나무 문화 벨트’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인구 소멸과 지역 경제 침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대구 외곽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는 훌륭한 로컬 브랜딩 사례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은 이를 일회성 방문에 그치게 할 것이 아니라, 남명 조식 학파와 한강 정구 학파로 이어지는 영남 유학의 학문적 깊이와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인문학 관광 상품으로 고도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한 경관 소비를 넘어 문화적 정체성을 학습하고 소비하려는 현대인들의 고차원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재의 대중화 이면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보존의 과제가 존재한다. 기후 변화의 여파로 배롱나무의 개화 시기가 매년 요동치고 있으며, 여름철 집중호우와 폭염은 목조 문화재인 하목정의 관리적 내구성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관람객들의 무분별한 훼손이나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체계적인 방재 시스템 구축과 문화재 가이드라인 확립이 시급하다. 보물이라는 격에 맞추어 지자체 차원의 정밀한 환경 영향 평가와 상시 모니터링 체계가 가동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일시적인 SNS 소비재로 소모되지 않고, 후대에까지 온전히 전승될 수 있도록 보존과 활용의 지혜로운 균형을 맞추는 성숙한 시민 의식과 정책적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출처: 대구일보 ([대구·경북의 명목을 찾아서-44] 대구의 배롱나무 명소, 하목정(霞鶩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