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전통적인 가치가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한복판에서, 평생을 침묵과 희생으로 일관했던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삶을 무대 위로 소환한 이색적인 문화적 시도가 시선을 모으고 있다. 경북 영주문화예술회관에서 막을 올리는 창작 음악극 ‘아버지의 계절’은 단순한 문화 행사를 넘어 극심한 세대 갈등과 가족의 상실을 겪고 있는 현대 사회에 묵직한 사회적 화두를 던진다. 평생 동안 한 가정의 생계를 짊어지며 자신을 지워갔던 한 남자의 생애를 다룬 이 극은 대중 예술이 사회적 치유의 도구로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이정표다.
이번 음악극의 서사적 배경은 한국 현대사의 압축 성장기를 관통한다. 영주에 정착해 한 평생 철도 기관사로 헌신해 온 평범한 가장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극은 개인의 미시적 삶을 통해 국가 발전의 이면에 숨겨진 가장들의 애환을 정밀하게 복원해 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기술과 예술의 유기적 결합이다. 평면적인 연극이나 단순한 콘서트의 형태를 탈피해 고도의 2차원 애니메이션 영상과 현장의 라이브 클래식 연주를 정교하게 엮어냈다. 무대 전면에 흐르는 서정적인 애니메이션은 관객들의 정서적 몰입을 극대화하고, 이에 정교하게 맞물리는 오케스트라의 선율은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내면적 갈등과 고독, 그리고 가족을 향한 숭고한 사랑을 소리로서 증명해 낸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노인 고독사와 부모·자식 간의 정서적 단절이라는 심각한 병리적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베이비붐 세대 아버지들은 은퇴 이후 가정과 사회 모두에서 소외당하며 존재의 정체성을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추진되는 이번 창작 극은 관객들로 하여금 단절되었던 세대 간의 정서적 교감을 회복하게 만들고, 잊혀졌던 부성(父性)의 가치를 성찰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예술이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조명하고 흩어진 구성원들을 다시 하나로 묶는 강력한 사회적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적 사례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이끄는 플랫폼으로서의 공공 예술관의 역할도 재조명받고 있다. 중앙 집중식 상업 문화에 밀려 고사를 거듭하던 지방 중소도시의 문화 생태계 속에서, 지역의 정체성과 서사를 담아낸 창작 콘텐츠가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고무적이다. 영주라는 지역적 공간과 기관사라는 구체적인 삶의 궤적을 융합해 보편적인 인간애의 가치를 길어낸 이번 시도는 향후 타 지자체의 문화 사업에도 훌륭한 벤치마킹 모델이 될 것이다. 결국 예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길이며, ‘아버지의 계절’은 바로 그 본연의 책무에 충실한 수작이라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출처: 경북일보 (선율과 그림으로 되살린 아버지의 삶…영주서 ‘아버지의 계절’)

